성경신학연구소





서구신학의 한계와 새로운 신학 패러다임 구축


 

기독교가 땅에 들어온 130 년이 지났다. 그간의 한국교회의 부흥과 발전은 세계선교의 역사에 비추어 자타가

공인하는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였다.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였다. 그러나 일을 자축만 하기에는 한국교회는 오래전부터

깊은 문제를 안고 있었다. 60-70년대의 교회 부흥이 상당부분 허상이었음이 곳곳에서 노출되기 시작했다. 90년대를 지나

면서 문제는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교회의 세습화, 강단의 황폐화, 지도자의 탈선, 교회 성장의 정체현상 등등.

 

지난 10년간의 세월은 문제를 수습하려는 갖가지 처방과 시도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질병은 치유되지 않고 영적 힘을 잃어

가고 있다. 의식 있는 지도자들의 고민은 깊어져 가고 대안과 대책 마련은 뾰족한 수가 없어 보인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본질적인 문제는 신학의 정체성에 있다. 하나님을 알아가기 혹은 하나님을 배워가기를 핵심으로 하는 신학의 내용에

문제의 뿌리가 있다.

 

이런 접근은 일견 너무 추상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다. 오히려 피상적인 처방과 제도적인 차원의 접근이

사실상 추상적이며 막연한 길이다. 오히려 신학의 새롭고도 올바른 이해가 가장 구체적인 처방일 있고,

마땅히 그러하다. 신학, 진리 추구의 길이 잘못되어 있거나 미숙할 때는 아무리 실제적이고 제도적인 접근을 시도해도

대증요법일 뿐이다. 신학은 교회의 뿌리이기 때문이다.

 

이점에서 서구신학은 가지 점에서 근본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다. 구원 중심의 루터식의 편협된 이해, 서구 철학과

교섭을 통해 형성된 신학 이론과 실제의 괴리, 성령론의 취약, 칼빈이 하나님 영광중심의 신학을 강조했음에도 불구하

율법에 대한 곡해, 무엇보다도 성경의 통일성을 강조했지만 증명하지 못한 미진함 등이다.

그중에 가장 극명한 한계를 노출하고 있는 것은 기독교를 구원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성경전체를 포괄적으로 설명하려고

하는 이른바 구원중심의 신학의 한계이다. 이는 루터 이후 개신교의 한계이다. 최근에 이를 넘어서려고 하나님나라 신학,

혹은 선교적 접근 등이 있지만 그것도 역시 틀에서 보면 구원의 역사 혹은 구속사를 중심으로 하는 보조적인 접근

뿐이다.

틀이 바뀌지 않는 내용을 아무리 자리매김을 해봐도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않는다. 이제 오백 전통의 구원중심의

개신교 신학을 청산할 때가 왔다. 이를 위해 서구신학에 대한 사대주의적인 태도는 근본적으로 재고되어야 한다.

서구학자들이 문제의 해답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도 고민하고 있다. 그동안 서구신학은 일정부분 중요한 역할과

기여가 있었다. 디딤돌 위에 성경 전체가 무엇을 말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서구로부터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는 수입신학, 번역신학은 이제 종식되어야 한다. 서구로부터 배우되, 한계와 문제점을

파악하고 넘어서는, 청출어람의 정신을 따르는 치열한 작업이 요구되고 있다. 전통적 구속사 신학을 넘어서는 “언약성

취사적 성경신학”이라는 새로운 추구와 학명은 “서구신학 넘어서기”의 뚜렷한 예를 보여주고 있다. 넘어서기 위해서는

넘어서야할 대상의 전모와 한계를 정확하게 알아야한다.

 

“서구신학의 한계와 새로운 신학패러다임 구축”, 이는 위기에 처한 한국교회가 지니고 있는 가장 절박한 화두이다.

모든 신학자, 목회자, 진지한 성도들의 핵심과제가 것이다. 과제를 피해갈 없다. 문제에 대한 진지한 진단과

극복의 과정을 거쳐 새로운 아시아 시대를 열어갈 수가 있을 것이다. 중국을 필두로 하는 아시아 교회들은 이미 서구신학

한계를 느끼고 있다. 보다 포괄적이며 성경적인 신학의 전수를 목마르게 기다리고 있다.  

           

한국크리스찬신문 제76호 사설중에서  주필 김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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