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신학연구소





기도,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2012.08.14 23:35

관리자 조회 수:1775

3)기도,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한국교회에 진지한 성경적 기도가 사라지고 있다

기독교의 기도는 하나님의 언약적 주권을 발견함으로써 내 뜻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태도요 행위이다

 

 1. 문제제기    

 

기도는 신앙생활의 핵심이다. 기도의 내용과 태도를 들여다보면 신앙의 깊이와 방향을 알수 있다. 왜냐하면 기독교의 기도란 나의 뜻을

포기하고 하늘 아버지의 뜻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도가 신앙생활의 중핵임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의 기도생활은

성경적 표준에서 벗어나 너무도 많이 일그러져 있다. 이방종교의 기도와 방불하다. 왜 그렇게 되었는가. 인간의 삶은 실상 수많은

고통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래서 누구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평안하기를 구한다. 이른바 소원 성취를 기원한다. 그래서 모든 종교에는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려는 기도행위가 있다.   

 

그러나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고 경외하는 참 종교인 기독교의 기도는 이방종교의 기도와는 근본에서 달라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기도는 이방종교에서의 기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예컨대 수능시험을 치르기 전에 새벽마다 수많은 학부형들이

기도회로 모인다. 그들에게는 수능이 목적이고 하나님은 그 수능시험을 위한 도구적 존재에 불과하다. 이는 주객전도이다.  

 

다양한 기도의 형태도 생겨났다. 새벽기도, 철야기도, 중보기도, 금식기도 등등. 갖가지 기도의 방법들이 나온다. 최근에는 관상기도,

향심기도 등 카톨릭적 배경을 가진 기도의 방법론을 통해 영성을 개발해야 한다고 하는 접근들이 개신교 안으로 까지 확산되고 있다.

관상기도는 인간과 신의 합일을 추구하는 신비주의의 배경에서 발생했다. 기도 속에서 스스로 침묵의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전달

받는다고 한다. 그것은 인간편에서의 명상을 통해 신에게로의 나아감을 추구하는 전형적인 이방종교적 행태이다.

 이런 영성적 기도방법론들은 신학적으로 세미 펠라기우스적, 즉 신인합력적인 접근에서 나온 것이다. 하나님이 주권을 가지고 있지만

인간도 자유의지를 가지고 구원의 역사에 협력한다는 그릇된 신학적인 틀안에서 기도가 정의된다.  

 

이런 기도행태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점도 노출되고 있다. 즉 성경이 가르치는 진정한 기도생활의 표준을 상실하고 점차 세속주의로

물들어 가는 신앙형태이다. 죄의 심각함과 은혜의 복음에 대한 절실성이 사라지고 합리적이고 세련된 교회생활로 바뀌는 것이

 한국교회의 대세이다. 그래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위한 절실함이 상실되었다. 그저 교회생활이 세련된 문화적 생활의

한 방편이며 종교적 악세사리 정도로 변질되고 있다. 이런 밋밋한 심령 안에 절실한 기도가 점차 사라진다.

이 땅위에 언약된 신령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진정한 기도가 사라지고 있다. 그래서 피상적인 신앙이 만연되고 있다.

그 결과 진지한 영적 투쟁의 치열성이 사라져 간다. 과연 진정한 기도는 무엇인가? 

 

2. 기도,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1) 복음진리와 기도  

 

왜 이런 기도의 본질에 대한 혼란이 생겨난 것인가? 그것은 신학적 문제점이다.  성경에 대한 복음진리에 대한 왜곡 즉 신관과 인간관의

문제로부터 파생된 문제점들이다. 기독교의 기도의 대전제는 절대적인 주권을 가지신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다는 것이다.

즉 인생과 역사에 대한 모든 것을 작정하시고 그 뜻대로 이끌어 가신다는 것이다. 이런 참종교인 기독교와 하나님을 모르고 자신의 욕망과

 바람을 이루려고 하는 이방종교의 기도가 같을 수가 있겠는가!  

 

기독교 기도는 하나님께서 언약성취적인 주권사역을 하시는 가운데 언약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위대한 속성과 은혜를 배우고 깨닫게

하시는 과정적인 섭리의 방편이다. 즉 하나님은 얼마든지 당신의 주권을 통해 당신이 계획한 바를 성취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시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능력과 은혜를 언약 백성에게 깨닫게 하시기 위해 스스로의 힘으로는 나올 수 없는 곤경 가운데 두시고

기도하게 하신다. 그것이 애굽이며, 바벨론이다. 그 안에서 언약백성은 하나님을 바라볼 수밖에 없으며, 그들의 죄악됨과 연약성을

깊이 깨닫게 된다. 그 죄악된 삶의 고통과 몸부림을 절절하게 겪으면서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긍휼 그리고 자비를 전적으로

의지할 수밖에 없음을 깨닫는다. 여기서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는 기도가 가능해진다.  

 

다시 말하자면 기도의 전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이며 인간 편에서는 자신이 전적 무능자요 죄인이라는데서 시작한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기도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주권적인 뜻에 의탁하는 행위를 함축한다. 이점에서 기도는 ‘하나님의 언약적

주권을 발견함으로써 내 뜻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태도요 행위’이다. 이것이 기독교의 기도의 본질이다. 따라서 올바른 기도의

전제는 성경적 복음의 확인이다.   

 

2)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기도의 전제  

 

그러므로 진정한 기독교 기도는 “하나님의 뜻, 즉 복음을 아는데서” 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뜻을 배워 가는 과정에서

 기도의 내용이 분명해지고 풍요화되어 간다. 최종적으로 하나님의 뜻의 실현을 확증하고 찬양하게 된다.  

 

그러므로 기도라는 것은 이방종교에서처럼 인간으로부터 시작되고 인간에 의해 실행되는 인간중심적 종교 행위가 결코 아니다.

그것은 인간 편에서의 명상, 혹은 사색적 과정으로 이해될수 없다. 그것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뜻으로부터 시작되고, 그 뜻의 실현자로

오신 그리스도를 통해 이해되어야 한다.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깨달아 가면서 하나님의 영광과 뜻을 추구하는 인생으로 변해가는 것,

이것이 기독교 기도의 본질이다. 즉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에게 붙은바 된 지체로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의 섭리의

일환에서 기도가 이해되어야 한다.  

 

 이를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즉 “성령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해야할 것을 알지 못하나 성령께서 친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신다(롬 8: 26)”고 한다.  말하자면 육신의 소욕에 사로잡힌 옛 자아는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진리의 영이신 성령이 오셨고, 지금도 하나님의 뜻으로서의 진리를 깨닫게 하시고 그 뜻을 따라가도록 기도하게 하신다.

그러므로 진정한 기도는 진리의 영으로 오신 성령의 주권적인 역사에 의하는 하나님의 사역으로 보아야 한다.  

 

그것은 예수님의 기도에서 그 전형적인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다음과 같이 기도하셨다.

“내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소서(눅:22 42)” 어떻게 해서 예수님의 이런 기도가 가능했는가?

그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런 그리스도의 기도의 의미를 깨닫게 되면 우리의 기도의 내용이 달라진다.

주어진 광야의 고통스런 혹은 어려움의 삶을 피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광야의 어려움은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주신 복된 선물이다. 그 고난과 고통의 과정이 세상적 영광을 바라는 옛 자아의 소욕을 쳐복종시키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로

 받아들이는 기도의 태도가 나온다.

 

3) 기도는 삶의 전인격적 변화의 과정  

 

기도는 이방종교의 염불처럼 관념적인 차원의 주문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계시된 진리, 즉 성경 말씀 안에 드러나 있는 하나님의 뜻의

발견으로 말미암는 구체적인 인격적 깨달음과 항복이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뜻, 달리 말하면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우리를 향하신 깊고

넓은 은혜와 사랑을 진정으로 알게 되면 자신의 생각과 뜻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어리석고 자기중심적인 가를 발견하게 된다.

그 결과 폅협되고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하나님의 거룩한 뜻 앞에 부단하게 복종시켜나가는 전인격적인 과정이다.  

 

 이 때 전인격적인 과정이라는 말이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기독교적인 기도란 반드시 인간의 인격적 과정 즉 지성적, 감성적, 의지적

 요소가 모두 동원되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기도란 무슨 객관적인 외부적인 일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의 기도는 철저히 전인격적 자기 부정의 과정, 즉 외부적인 일이 자기 욕망대로 이루어지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면의

 어리석은 욕망이 하나님의 뜻에 의해 쳐복종되는 과정이다. 이는 날마다의 삶속에서 이루어지는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다.

날마다의 삶속에서 옛 사람의 어리석음의 죽음 혹은 무너져감(mortification), 그리고 날마다 속사람이 살아나는 (vivification)것이

기도의 핵심내용이다. 요컨대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 자신의 뜻을 포기해가는 ‘전인격적 삶의 과정’이다.

 

 4) 기도는 삶 전체를 통해 실행된다.

 

기도는 하나님만 바라보며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만을 의지하는 삶의 방식일 수밖에 없다   이점에서 볼때 기도는 특정시간에 신과의

합일을 위해 행하는 특정한 종교적 행위가 아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한 터위에 이루어지는 전인격적 과정이므로,

그것은 당연히 특정시간이 아니라 전생애에 걸쳐서 혹은 전 삶의 영역에서 절실하게 이루어진다.

이는 사도 바울이 말한 대로 “쉬지 말고 기도하라” 혹은 “무시로 기도하라” 라는 명제로 요약된다.  

 

 말하자면 기도는 생활 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태도, 하나님을 전적으로 배워가는 자세를 의미한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의 힘으로는 나올 수 없는 상황가운데 두시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바라보게 만드신다.

그것은 구약적으로 말하자면 광야 생활이다. 광야는 하늘을 바라보아야 살수있는 장소이다. 그래서 기도는 하나님만 바라보며

그의 은혜의 손길만을 의지하는 ‘치열한 삶의 방식’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이방종교처럼 어떤 특정시간 특정장소에서 행하는 종교적 주문행위가 결코 아니다.

 

< 한국크리스천신문 체제개혁시리즈 중에서 - 김규욱 연구위원 >




X
Login

브라우저를 닫더라도 로그인이 계속 유지될 수 있습니다. 로그인 유지 기능을 사용할 경우 다음 접속부터는 로그인할 필요가 없습니다. 단, 게임방, 학교 등 공공장소에서 이용 시 개인정보가 유출될 수 있으니 꼭 로그아웃을 해주세요.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