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신학연구소





성경이 가르치는 교회의 표지

2011.10.29 16:57

관리자 조회 수:2392

성경이 가르치는 진정한 교회의 표지는 무엇인가?

 

 16세기 이후 철저히 비성경적인 교회의 모습을 지녔던 로마 가톨릭 교회의 그릇된 전통을 비판적으로 극복하면서

전통적인 개혁교회는 다음과 같이 교회의 표지를 설명했다. 즉 첫째 말씀의 올바른 증거, 둘째 성례의 정당한 집행,

셋째 권징의 신실한 집행이다. 그러나 오백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성경이 가르치는 교회의 참된 표지가 무엇인가를

새롭게 성찰하고 규정할 때가 왔다.

 

  16세기 종교개혁은 미완의 개혁이기 때문이다. 종교개혁은 교회 개혁의 올바른 기준과 방향을 건전하게 제시했다.

오직 성경의 권위에 의해, 오직 성경의 가르침을 대원칙으로 표방한 것이다.

이는 항구적인 개신교의 절대 원칙이다.

진리의 절대성에 대한 의심을 노골적으로 표출하고, 모든 것을 상대화시키는 상대주의의 시대에 이 원칙은 더욱 중요하다.

 

  종교개혁은 성경의 가르침에 의해 교회를 갱신했지만 여전히 구교회의 잔재를 일정부분 지니고 있다.

그것이 교회의 표지에 대한 설명에 남아 있다.

성례의 정당한 집행이나 권징의 신실한 집행은 말씀의 올바른 가르침에 철저히 종속되고 새롭게 규정되어야 한다.

성례란 로마 카톨릭 교회의 의식주의의 산물이 아니던가!

 

   성경은 의식적인 성례를 가르친 바가 없다.

예수 그리스도야 말로 하늘의 생명의 떡이자 그분의 십자가상의 피흘려 죽으심이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의 확증이다.  신약의 성도는 그리스도를 통해 직접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는 만인제사장이다.

성경은 신부나 목사를 구약적인 제사장으로 규정한 바가 결코 없다. 그것은 진리의 왜곡이다.

신약 성도는 의식적인 성례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생명의 말씀을 통해 그의 생명의 축제 속에 살아간다.

그것이 진정한 신령한 그리스도와의 하나됨이다.

 

  권징의 방식 역시 구교회의 잔재이다. 교회의 특정 기관의 권위를 전제하고 재판의 형식을 통해 정죄하고

사죄하는 형식을 취하는 것이다.  이것이 중세 교권주의의 잔재이며 심각한 폐해였다.

성경은 그런 방식의 교회 기구를 통한 재판의 형식을 가르친 바가 없다.

성경이 가르치는 진정한 권징은 말씀의 절대적인 권위에 의한다. 말씀의 신실하고 권위적인 선포는 성도의 영혼과

관절을 찔러 쪼개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말하자면 말씀의 정당한 선포 자체가 우리 영혼을 일깨우고 책망하게 하는 권징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교회의 표지는 유일하다. 즉 하나님의 올바른 말씀의 확인과 선포이다. 이것이 근본적인 표지이다.

그 다음 종속적인 의미에 있어서 교회의 표지가 있을 수 있다. 즉 진리 안에서의 사귐이다.

진리가 진리답게 증거되면 인생은 변한다.

철두철미 자기중심적인 인생관과 세계관을 가지고 살아가던 사람이 하나님 중심, 그리스도 중심의 인생으로 바뀐다.

그런 인생은 자신이 그리스도의 지체임을 알아 다른 성도와 진리안의 사귐을 갖고 싶어하며

그 사귐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됨의 진정한 기쁨을 얻는다.

 

  이것이 성경이 증거하는 교회이다. 진리되신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살아계심의 확증,

그 진리에 입각한 사귐을 의미한다.

그 안에 성장과 기쁨이 있으며, 세상을 이기는 지혜가 있다. 교회의 표지는 새롭게 규정되어야한다.   

 

김규욱 연구위원

 

    
   
   
 




X
Login

브라우저를 닫더라도 로그인이 계속 유지될 수 있습니다. 로그인 유지 기능을 사용할 경우 다음 접속부터는 로그인할 필요가 없습니다. 단, 게임방, 학교 등 공공장소에서 이용 시 개인정보가 유출될 수 있으니 꼭 로그아웃을 해주세요.

X